Alfred Douglas

(Bosie)




오스카 와일드와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며, 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번역해 주었고, 본래직업은 시인이었다.






1870년에 퀸즈베리 후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알프레드 더글라스(alfred douglas 이하 bosie)는 스물한 살 되던 해에, 자신보다 열다섯살 연상의 오스카 와일드를 만났고, 그의 우월한 미모로 당시 두아이의 아버지였던 오스카 와일드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서로의 합의 하에 연인이 된다.

이 시기의 와일드는 최고의 작품들을 쏟아냈고, 당대의 아이콘이 되며,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시의 아버지인 '퀸즈베리 후작'은 그들의 관계가 우정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 차리고, 분노하며, 와일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열이 오를대로 오른, 와일드는 보시의 아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준비하고 있었고, 런던 사교계를 잘 알던 그의 친구들 역시 오스카 와일드를 뜯어 말렸으나, 평소 다혈질적이고 공격적이었던 성격이었던 보시의 부축임에 그를 고소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게 패소했고, 동성애가 불법인 영국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외설죄로 2년간 징역형으로 수감이 된다.

와일드가 감옥에서 석방 이후 9월 4일, 나폴리에서 보시를 만나게 되지만, 이들은 3개월만에 이별하게 된다.

와일드와 헤어진 이후, 보시는 4번의 결혼으로 2세를 유일하게 한 명 갖게 되지만, 불행히도 이 아이는 정신병에 시달렸고, 이른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시는 심장마비로, 74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한편,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인기를 한몸에 독차지했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희대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스캔들에 의해 재판패소로 몰락하고,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 후, 비극적인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나게 된것은 그로부터 3년 이후였다. 이때, 장례식장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은, 보시였다고 전해진다.)

<죽은 시인에게 보내는 시 - 알프레드 더글라스>

어젯밤 나는 그를 꿈에서 보았습니다. 환히 빛나며
모든 슬픔을 지워버린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옛적,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음률로 들려왔던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일상적인 것에 감추어진 경이로움을 찾아냈고,
무가치한 것에서 기적을 끌어내며
비천한 것에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그의 손에 모든 세상이 마법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밖에서 문이 굳게 잠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단어들, 잊혀진 이야기들,
그리고 절반쯤만 전해진 불가해한 사건들,
그런 모든 것을 잃었기에
나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명료하게 밝혀져야 했건만,
생각은 죽은 새처럼 목소리를 잃고 헤맬 뿐입니다.
나는 잠을 깨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출처 ☞
☞Alfred Douglas

☞Love Story

4월 16일 토요일에서 4월 17일 일요일 아침까지.






새벽3시에 우리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명닭으로 가서 닭토리탕을 먹으면서 귀신얘기를 했다.

몇일 전 합정역에서 '포니'의 기타리스트 '송광호'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인 합정동 폐가단지가 떠올랐고, '남자라면 그런곳에 가야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정.







첫차가 운행될때까지 합정동의 폐가 단지를 돌아다녔고,
이날 잭은 다리를 접질러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양화대교를 아무렇지 않게 횡단하고, 아침햇살 가득한 한강공원에서 뜀박질을 했다.

엄마.



2011년 4월 14일. 오늘보다 조금 젋었던 우리엄마.

봄.





떨어지는 벚꽃과,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았다.

예쁘기도 하지.
2012년도까지 활짝 피어있거라.

4월 4일 월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이라 부랴부랴 뛰어가던 도중, 머리위로 나뭇가지가 떨어졌다.





산도 아닌 주택단지골목에서 떨어진 나뭇가지가 이상해, 하늘을 보니 전봇대 위에 까치가 둥지를 틀고있었다. 기초공사단계였는데, 도시에서 자라난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장면이라 매우 흥미로워, 앞으로의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복잡한 도시풍경속에서 소소한 여유를 목격함으로써, 지금부터 까돌이의 집짓는 과정을 관찰일기로 이 블로그에 기록하려 한다.

시간 별로 체크를 한다. 잔나뭇가지들이 분명히 점점 늘어나고있었다.


시간이 지나, 오늘의 일과를 마친후 집으로 가던 중.




이상한 트럭 한대가 서있다.
설마하고 봤더니, '긴급전기공사요원'이 출동해 까치집을 철거하고 있었다.

'아저씨 설마 이거 까치집 없애는 거에요?' 하고 물었더니,
잦은정전으로 민원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렇게 내 관찰일기는 四월 死일로 죽었다.

이제 관찰일기 안써.

ask me



뛰뛰빵빵 뿌뿌빵빵

The Pony







쉬는시간.

4월 2일 토요일



French Horn Rebellion






ROLLING HALL

4월 1일 금요일.

금요일 아침이 되자, 카카오톡으로 친구들 한명 두명 모아 단체채팅을 하였다. 아쉬운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에서, 바다가 보고싶다는 게릴라성 의견들이 나왔다. 만우절이라 거짓말처럼 한 약속이, 저녁9시에는 승용차 두대로 멤버 9명 모두가 압구정에 모였다. 막연하게 '바다로 떠나자'의 약속에서, 굶주린 배로 지도를 펼치고, 일단 바닷가 근처의 횟집으로 가자 라는 의견에 모두 동의를 하고 월미도로 목적지로 잡고, 연안부두 근처의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목표로 출발했다. 주문한 농어와 광어가 나오기 앞서 나오는 진수성찬들이, 한상가득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어 음식위에 음식접시로 층을 쌓았다. 너무 당연하게도 앞서 나온 음식으로 이미 가득찬 배로, 큰 사이즈 두접시의 회의 양을 보고 다시한번 경악하며, 벌칙게임을 하며, 지는 사람은 '와사비 회버거'를 먹었다. (원병희,이현정,유승보,방상혁 이 네명의 바보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식사가 끝난 우리는, 차와 사람이 없는 도로 위에서, 시끌벅적하게 서로 잡고, 떠들고, 노래를 틀고, 춤추고 웃으며, 나무와 풀밭에 영양소를 뿌리며, 청춘을 낭비했다. 중간에 1호차의 이종광,원병희,김영진,홍민철,이현정은 서울로 먼저 복귀한다. 최종적으로 바닷가에 도착한 멤버로는 2호차에 타고있던 방상혁, 전우성, 유승보, 최건석 이 네명이 고작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드넓은 백사장과, 지평선이 보이는 바다와는 거리가 있었다. 바다는 철문 건너편으로 보아야 했으며, 담너머라도 볼수있던 바다는 짙은 안개 덕분에 찍는 사진들마다 뿌옇게 나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배경으로, 폭죽놀이와 근처의 오락시설물들을 이용한 후, 우리 역시 뿌연안개를 가르고 서울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이날은 6년간 함께했던 내 아이팟 클래식을 잃어버린 날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