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ggy










24hour party people







지하철 막차를 타고 이태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시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친구들과,
지칠대로 지친 몸뚱이의 스트레스를 풀어가며,
상할대로 상한 위 위에 각종 알콜들을 부어가며,
오랜만에 서울 투어를 돌다, 결국 신사동의 한 클럽앞에서 여명을 맞이하며,
윗옷까지 벗고 씩씩거리는 어느청년들의 싸움구경도 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낮이 되었고, 잠깐의 합주로 워밍업을 한후,
클럽 FF에서, 밴드 essence의 EP앨범발매 쇼케이스에 게스트로,
공연도 하고, 공연도 보았다.(이날의 라인업은 PONY, PATiENTS, essence)

포니들과 함께 조금 거리가 떨어진 클럽 '빵'으로 부랴부랴 달려가 포니와의 자매밴드 '서교그룹사운드'의 단독공연을 보고난 후, 다시 일요일 아침이 올때까지 춤을 추고 노래 하며,
이리나 승냥이같은 짐승처럼 놀았다,
토요일밤부터 내릴거라던 비는 결국 일요일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했는데, 결국 다시 짐승처럼 비에젖어 들어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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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주말은 무조건 놀아야 된다라는 의무감을 주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안 놀았던적이 없는것 같다 라고 결론 내리면서,
귤을 하나 까먹었는데 무척 달다.





그래. 무척 달다.

MONAMI PEN









연필과 지우개의 관계는
플라토닉일까, 아가페일까, 에로스일까,


monami 수성펜은 그림그릴때 부담이 없어 참 좋다. 하지만 보관할 때의 부담이 있어 참 싫다.

2월 24일 목요일.

봄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깨질것 같은 코, 메말라가는 나무와, 일찍오는 밤, 구두에서 나는 또각또각 소리를 더차갑게 느껴지게 해주는 겨울이 정말로 좋다. 나태한 나에게 오들오들 떨어 댈 힘이라도 주기 때문이다.

높은습도, 자외선, 대중교통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 장마철만 되면 축축해지는 신발과 양말, 쓰레기장에서 풍기는 악취가 무질서하게 난무하는 여름이 너무나 싫다.

결국 봄은 지나가겠지.
긍정적으로 본다면 여름 역시 지나가겠지.










2월 24일 목요일.

결국 치과의사는 나에게 또 거짓말을 했다. 다음달이면 풀러준다던 교정기를 또 다음달로 미뤘다. 이제 안믿어.










우리는 오늘도 살롱을 가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바보처럼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탔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했다.
우리는 바보이기 때문에, 하하하 하고 웃고 넘겼다.

바보도 지친다. 자야지.

2월 22일 화요일




Jack과 나는 홍대에 있는 카페에서 사과쥬스 하나시켜놓고 서로 이상한 그림들을 그리고 보여주며 깔깔 댔다. 이게 맨날 이렇진 않아. 여유가 지속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홍대역에 붙어있는 지하상가의 전등을 소등할 때 즈음,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에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진 한장찍고 집에 돌아왔다. 잘꺼야.

John Cooper Clark

2011년 2월 21일 영국의 한 언론에서 'Bard of Salford'인 'John Cooper Clark'가 자신의 근간 다큐멘터리에 대해 인터뷰했다. 영화의 제목은 'Evidently-John Cooper Clark'로 빠른 시일내로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늘은 나의 아이돌 중 한명인 이 'John Cooper Clark'에 대해 포스팅해보기로 한다.









(반드시 재생시킬것↑)

Postpunk, Joy Division 그리고 Manchester에 빠지게 됐을 무렵, 나는 위의 조이디비전의 영상속에서 오프닝장면으로 재미있는 인물을 목격하게 된다. 첫인상으로는 밥딜런과 같은 외모로(말끔한 쓰리버튼 수트에, 선글라스를 꼈고, 머리는 부시시했다.), 굉장히 빠르고 강한 어투로 자신의 손바닥 크기의 메모장 속에 나열된 단어들을 읊어댔다. 충격. 저 잠깐의 영상으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John Cooper Clark'

어린시절 그는 결핵을 앓았고, 그의 학창시절인 11학년 진급에는 병원비로 학비를 다 날려버렸기 때문에,학교에는 다닐수 없어, 집에서 무명 시인이었던 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우거나 글쓰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자라면서 알게된 자신의 동성애 코드때문에 'mods'가 되기는 쉽지는 않았지만 존의 10대 시절은 'salford College of Engineering'의 연구실에서 기간직 엔지니어로 일을 했으며, 인쇄소 에서도 일을 하며, 노동자 계층으로써 그는 충분히 모즈족이었다. 21살인 어린나이에 그는 'chris'라는 이름의 여자와 첫번째 결혼을 하게 된 후, 'dorset'이라는 동네로 이사하여 살림살이를 차리게 된다. 궁핍한 생활이 지겹도록 지속 되자, 결혼생활 3년만에 이혼을 하게되고, 다시 'manchester'로 돌아오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펑크 열풍이었는데. 'Sex pistols', 'Buzzcocks', 'Elvis Costello' 와 같은 무수한 인재들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무명시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시를 쭉 써오던 존은 유명아티스트들과 함께 서포트퍼포먼스로 오프닝에서 시를 읊어댔다. 점점 탄력이 받게 된 그는 앨범까지 발표한다. 짧은 사이에 4장의 스튜디오 앨범, 그리고 2장의 앨범들을 급하게 발매한 후, 급기야 완성도 있는 트랙만 따로 모아 다른 싱글의 앨범도 낸다. 그렇게 점 점 상승세로 인정을 받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펑크씬이 감퇴해 가면서, 존 역시 하락세를 맞이한다.
견디지 못한 그는, 헤로인에 의존하며 허우적 대며, 전형적인 데카당스의 길을 걷게 된다.
1988년 'velvet underground'의 'NICO'가 사망하기 전 멘체스터에 있을 당시 존은 니코와 잠깐의 동거도 하게되는데, 그 에피소드를 들어보자면, 약물중독 치료에서 거의 완치된 존은 'Sadgley Park'에서 산책을 하던 도중 자학중인 니코를 발견하게 되고, 니코를 바른길로 설득을 시켰다고 한다. 후에 'Brixton'으로 집을 옮긴 존에게 니코가 접근해 작업을 건 것. 이후 동거를 시작하면서도 니코는 아무층에서나 잠을 잤고 여전히 타락적인 인생을 즐기고 있었고, 건강의 호전을 위해 스페인으로 날아간 니코는 스페인에서도 마약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날도 마약에 쩔어 자전거를 타다가 쿨하게 밥 숟가락을 놓게 된다.
존이 완벽하게 마약을 끊게 된것은 90년도 초였다. 그사이 존은 언어교사인 'Evie'를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고, 현재까지 한명의 딸과 함께 충실한 가장으로 살아가고있다.








프랑스 천재시인 'Baudelaire'에 가장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존의 시는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냉소적이며 공격성이 묻어나는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의 시를 좋아하는건 문장 자체로만 읽어 보아도 단어의 선택과 어감이 그의 위트와 유니크한 관찰력을 돋 보이는것 같아서 이다.


Steel shoes on the stone cold floor
I hear the screws screaming in the corridor
The bad news and the slammin' of the door
The "what did i do's" and the "what am I here for's"
Shades of doubt fall deeper than the slag mine
Lights out... sack time

(John Cooper Clarke-'36hours' 중)


더 많은 그의 시는 이쪽에서 볼수있다☞ ( http://johncooperclarke.com/ )









사진으로만 보아도 무척이나 마른 [(5ft 11in,chest 32in, waist 27in, weight 116lb)(신장180cm, 체중52kg)]몸으로 그는 60세의 나이로 여전히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나 고집하는 저 헤어스타일과 슬림팬츠와 쿠반힐 부츠 차림이 여전한 그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새로운 타입의 작업물을 계속 연구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가족을 아낄줄 알고, "새로운 세대들과의 공유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라고 말하는 이 멋진 할아버지에게 나는 항상 응원과 박수를 보낼 것 이다.


ondish.






신묘년이네요. 화이팅

2월 17일 목요일.

Jack은 너무나 고맙게도 항상 나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준다.
오늘은 일찍 조퇴를 했다.









밴드'Rolling stones'의 원조 기타리스트 'Brian jones'의 사망후, 그의 빈자리를 매꾸기 위해 '믹테일러(Mick Taylor)'라는 꼬맹이가, 날고 구르는 돌 형님들 사이에서 기타를 연주하게 됐고, 형아들의 방탕한 생활에 지친 '믹테일러' 역시 롤링스톤즈의 기타 자리에서 떠나게 된다. 그후, 빈자리를 매꾼게 '론우드(Ronnie wood)'였다.
사실 '론우드'는 관심 밖이었다. 나는 롤링스톤즈 내에서 '브라이언존스'의 팬이 었으니까.
그런 '론우드'에 관심이 가게 됐었던 것은 정말 너무나 예뻤던 그의 여자친구인 'Ekaterina Ivanova' 때문에 검색을 했었다. 지금은 '론우드'의 폭행으로 인해 헤어졌지만...
(제일 아래의 사진 - 당시 론우드는 63세의 나이로 20살의 Ekaterina Ivanova를 사귀는 완전한 도둑놈의 형상을 하고있다.)
여튼 검색 도중 재밌게 봤던것은, 그는 롤링스톤즈의 투어 중 에도 대기실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스마트함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론우드'의 작품이 한국에 온 한 큐레이터의 소장품으로 이태원에 있는 조그마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다.
놓칠수 없었다. 이태원에 도착했다. 역부터 얼마 안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갤러리였다.








기대했던 존레논을 그린 작품은 없었다...



론우드 이외에도, 테리 로저스, 피카소, 무라카미 다카시 등 여러 유명작가들의 전시품도 있었다.


전시는 이태원에 위치한 '두루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원래의 전시일정은 17일까지였지만, 20일까지 연장되었다고 한다.
관람료 역시 무료이니, 좋지 아니한가.

'론우드'의 여러 작품들은 [http://www.jonathanpoole.co.uk/rwood.html]☜이곳에서 더 볼수있다.

이태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후에, Jack과 나는 명동의 까페로 가서 그림을 그렸다.





낮부터 오스카 와일드의 책이 보고싶었다.
집에 오기전에 뜬금없이 서점에서 '오스카와일드 환상동화'를 샀다.
신나서 포장지를 박박 찢어 대고 있을때 쯤에서야 디카 배터리의 수명도 다 달았고, 내 에너지도 다 달았다.